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문단 편집) ==== 반론 ==== 사실 작중 내용을 보면 근거조차도 부족한 것이, 포르투가와 제제는 [[양자(가족)|양자]] 이야기까지 오고 갈 정도로 친근한 상태였으며, 포르투가 역시 제제를 끔찍히 아꼈다. 게다가 포르투가가 자살을 할 만큼 심적으로 힘든 처지에 있었다는 암시는 작중에서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자살설은 말 그대로 [[뜬금포]] 기습사격, 더 적나라하게 말한다면 작품과 전혀 상관없는 제멋대로의 상상을 섞은 해괴한 오독을 '독창적이고 신선한 독해' 라고 착각하는 행태에 지나지 않는다. 당장 [[구글]]에 검색해봐도 나무위키 이외에는 어디서도 비슷한 주장이 제기된 사례를 확인할 수 없고, 그렇다고 나무위키 내에서 제기된 해당 주장에 상식적으로 납득 가능한 근거가 함께 제시된 것도 아니다. 노골적으로 말한다면 누구나 편집에 참여할 수 있는 나무위키의 특징이 나쁜 형태로 나타난 사례로, 어떤 이가 자신이 상상한 2차 창작을 자기 블로그가 아닌 나무위키에 올린 것인데 어쨌건 그것도 누군가의 기여이긴 기여이니 (문서의 완성도를 생각하면 차라리 지우는게 나을 엉뚱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남아있는 것일 뿐이다. 자살설 측에서 근거로 제시하는 두 가지에 대한 반론은 다음과 같다. 1. 상식적으로 차가 [[철도]] 위에 가만히 있을 이유가 없다. 더구나 작중 망가라치가 기차의 기적소리는 정말로 요란하다고 하니, 운전자가 바보가 아닌 이상 자살할 생각이 아니라면 멀리서 기차가 달려오는 것을 알고서도 철로 위로 자동차를 몰고 갈 이유가 없을 것이다. * 일단 철도에는 '[[철도 건널목]]', 즉 철도과 도로가 교차하는 길목이 있다. 그리고 이 '''철도 건널목은 1990년대까지 한국에서도 대표적인 교통사고 빈발 자역으로 손꼽혔다'''는 사실 단 하나로 반박되는 주장이다. 심지어 나무위키에도 [[철도 건널목 사고]]라는 문서가 따로 만들어져 있을 정도. 그나마 한국의 경우는 90년대를 지나면서 철도 건널목의 안전장치들을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사고 예방을 위한 대규모 켐페인까지 실시했지만 작중 배경은 1920~30년대의 브라질, 게다가 빈민인 제제의 가족이나 그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주변에 사는 것으로 보아 그리 잘 사는 동네도 아니다[* 브라질의 심한 빈부격차와 열악한 빈민가의 사정은 [[파벨라]]와 같은 빈민가의 사례로도 유명하다.]. 차단기, 경보기등 그나마의 안전장치조차 미비했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90년대 한국의 철도 건널목 관련 교통안전 켐페인 내용을 보면 "철도 건널목에서 차의 시동이 꺼진 상태에서 기차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릴 경우, 시동을 다시 거는 것을 포기하고 차를 버리고 탈출해야 한다"는 것을 아주 중요시하여 강조했다. 왠만해서는 시동이 꺼질 일이 없는 [[자동 변속기]] 차량과는 달리 [[수동 변속기]] 차량의 경우 운전중 시동이 꺼지는 일이 드물지 않고, 특히 저속으로 심한 요철을 넘어가야 하는 건널목은 시동이 꺼지기 쉬운 구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꺼진 시동이 바로 다시 걸리면 다행이지만 만약 잘 걸리지 않을 경우, 차보다는 목숨이 소중하니 차를 버리더라도 운전자와 승객들이 탈출하는 것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것이 해당 켐페인의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런 뻔한 이야기를 굳이 홍보까지 해야 했던 것은, 만약 다시 시동이 걸리기만 하면 불과 수미터정도만 이동하는 것으로 충분히 건널목을 빠져나갈 수 있으므로 마침 심하게 당황하기까지 한 상태에서 기차가 점점 다가오는데도 차에 머무르며 계속 시동을 걸어보려고 시도하다가 결국 사고를 당하는 일이 그만큼 드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에 더해 21세기는 커녕 80~90년대에 비해서도 기계적 신뢰성이 부족했던 20~30년대 자동차의 기술적 수준을 생각하면 브레이크나 조향장치 등 고장으로 불의의 사고를 당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았으리라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것. 즉 이 부분은 근거라고 보기도 우스운, 억지 트집에 불과하다. 2. 제제가 회복 도중 꾼 악몽에 등장한 망가라치바 기차가 '''"내 잘못이 아니야! 내 잘못이 아니라구!"''' 라고 말하고, 이 꿈에서 깨어난 뒤 제제가 계속 우는 장면이 나온다. 이것은 포르투가의 죽음이 기차의 잘못이 아닌 포르투가의 자실이라는 것, 그리고 제제에게 있어 친부 이상으로 소중하고 의지가 되는 존재였던 포르투가가 자살이라는 이기적인 선택을 하여 자신을 떠났다는 슬픔과, 그것을 막지 못했다는 제제의 무력감을 보여주는 것이다. * 물론 제제에게 있어 포르투가는 친아버지 이상으로 더 소중한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을 사고로 잃었으니 제제가 지독한 슬픔에 빠지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러니까 내심으로 '포르투가를 죽인' 망가라치바 기차를 원망하게 되는 것도 당연하며 그 감정이 망가라치바 기차를 '살인자'라 부르는 꿈으로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기차는 어디까지나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위치를 지나간 것 뿐이고, 악의를 가지고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라 단순히 불운한 사고였을 뿐이기에 '내 잘못이 아니다' 라는 항변이 나오는 것이라 본다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소중한 사람이 죽으면 무조건 슬픈 것이지, 소중한 사람이 자살로 죽어야만 슬프고 사고사로 죽으면 안 슬픈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 부분은 그냥 '포르투가는 자살했다'는 결론을 정해놓고 근거를 억지로 거기 끼워맞추려고 드는 것에 불과하다. 게다가 작중 포르투가는 자신이 좋아하던 트라스 우스 몬트스(Trás-os-Montes)[* [[포르투갈]] 북동부에 있는 지명.] 근방으로 가서 여생을 평화롭게 마무리하고 싶다고 제제에게 말한 바 있다. 이와 함께 '훨씬 나중의 일이 될 것이다'(=당분간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라는 말을 덧붙이기까지 한 것. 자살따위를 꿈꾸는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희망적이고 미래지향적이며, 인생에 대한 염증따위는 전혀 보여준 바가 없다. 오히려 제제가 아버지에게 심하게 구타당한 뒤 '자신은 쓸모없는 아이'라며 '망가라치바에 뛰어들어 죽겠다'고 말하자 정말로 화를 내면서 "네가 날 사랑한다면 그런 말은 하지 말아라"고 하고, 그날 밤 혹시라도 제제가 정말로 자살할까봐 철길 옆에서 망가라치바 막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린 뒤에야 집에 돌아가기까지 한 인물이다. 즉 작품 전체의 주제에서 '삶에 대한 절망'의 결과인 자살에 대한 [[안티테제]]의 역할을 담당하는 인물인 것이다. 작품을 정 독특하게 읽고 싶다면 작품에서 종종 '죽음'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망가라치바 기차[* 망가라치바 기차는 단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를 움직일 뿐인 무인격의 강력한 힘의 상징처럼 등장하지만, 오히려 이 때문이 무자비한 힘과 그에 의한 죽음을 상징하는 소재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상기된 것처럼 삶에 절망한 제제가 '망가라치바에 뛰어들어 죽겠다', 즉 이 힘에 의한 죽음을 가장 고통없고 빠른 죽음으로 여기는 것이 좋은 예.]에 의해 '삶과 희망을 지키는 선한 어른'의 상징이던 포르투가가 슬픈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는 아이러니에 대해 연구해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분류:브라질 소설]][[분류:1968년 소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